금융 사건으로서의 바젤 공의회(1431–1449) — 결론
결론
1431년부터 1449년까지 열린 바젤 공의회는 인구 1만 명의 도시에 수천 명의 방문객을 불러들였고, 거의 20년 동안 이 도시를 라틴 교회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공의회는 후스파와 협상하였고, 초입세(annates)를 폐지하여 교황청 재정을 개혁하였으며, 그리스 교회와의 합동을 두고 교황과 경쟁하였고, 에우제니오 4세를 폐위하고 사보이아의 아마데오 8세를 펠릭스 5세로 선출하였다. 공의회가 실패한 것은 메디치 가문과 이탈리아 은행가들을 등에 업은 교황청의 정치적·재정적 자원에 필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젤에 공의회는 최고 수준의 금융적 사건이었다. 공의회는 소비와 도시 수입을 자극하였고, 도시로 하여금 숙박과 물가를 규제하게 하였으며,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이탈리아 은행가들을 도시로 불러들이고 이탈리아 금융 기법을 전해 주었다. 공의회는 제지 산업을 탄생시켜 인쇄업의 융성을 준비하였고, 대학 설립으로 이어진 인적 교류를 만들어 냈다. 또한 공의회는 바젤이 처음으로 국제기구를 유치한 계기였으며, 이 경험은 국제결제은행(BIS)의 소재지라는 오늘날 바젤의 역할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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