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의 BIS
전쟁이 끝났다고 국제결제은행(BIS)을 둘러싼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BIS의 청산을 권고한 브레턴우즈 결의는 여전히 유효하였고, 미국 정부는 그 이행을 압박하였다.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이에 저항하는 동안, BIS는 자신이 보유한 약탈 금에 관하여 연합국과 협상하였다. 1948년 협정에 따라 BIS는 독일제국은행(Reichsbank)으로부터 받은 약탈 금에 상응하는 양의 금을 연합국에 반환하였다. 미국 정부는 그 대신 청산 요구를 철회하였다.1
이후 BIS는 유럽 재건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 1950년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의 회원국들은 유럽결제동맹(EPU)을 창설하였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부족한 달러 없이도 무역수지를 결제할 수 있게 한 다자간 청산 제도였다. BIS는 그 대리기관 역할을 하였다. 유럽결제동맹은 유럽 무역의 자유화와 유럽 통화의 태환성 회복에 기여하였으며, 태환성 회복은 1958년에 달성되었다.2
그 후 수십 년 동안 BIS는 1960년대의 금 풀(gold pool)과 중앙은행 간 스와프 약정을 통하여 고정환율제인 브레턴우즈 체제를 지원하였다. 또한 유럽경제공동체(EEC) 중앙은행 총재 위원회를 유치하였는데, 이 위원회는 유럽통화동맹을 준비하였다. 1974년에는 훗날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되는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제F부에서는 이러한 전개를 살펴본다. 브레턴우즈 회의가 폐지하려 했던 기관은 한 세대 안에 국제금융의 핵심 기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주석
- 전후 BIS와 연합국 사이의 협상, 약탈 금 반환에 관한 1948년 협정 및 청산 요구의 철회에 관하여는 Toniolo, 2005 참조. ↩
- 유럽결제동맹(1950–1958)과 그 대리기관으로서 BIS의 역할에 관하여는 Toniolo, 2005; 유럽 통화 통합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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