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누이 가문
베르누이 가문은 한 피난민 가문이 상업에서 학문으로 나아간 경로를 잘 보여 준다. 이 가문의 선조는 안트베르펜의 상인으로, 개신교도였던 그들은 16세기 후반 스페인의 탄압을 피해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했다. 1622년 향신료 상인 야코프 베르누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바젤로 이주하여 시민권을 취득하고 이 도시에 사업체를 세웠다.1 그의 후손들은 상인, 시 참사회원, 그리고 무엇보다 학자였다.
17세기 후반, 이 가문의 두 형제인 1654년생 야코프 베르누이와 1667년생 요한 베르누이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가업을 떠나 수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버지는 그들이 각각 신학자, 그리고 의사나 상인이 되기를 원했다. 야코프는 1687년 바젤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었고, 1705년 요한이 그 교수직을 이어받았다. 두 사람은 함께 라이프니츠가 창안한 미분법과 적분법을 발전시켰고, 역학과 기하학의 문제들을 풀었으며, 한 세대의 수학자들을 길러 냈다. 그 가운데에는 요한의 아들 다니엘과 니콜라우스, 그리고 바젤 인근 목사의 아들로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된 젊은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있었다.2
제A부에서 이미 언급한, 1713년 사후에 출간된 야코프 베르누이의 Ars conjectandi(『추측술』)는 확률론의 기초를 놓고 대수의 법칙을 정식화했다. 1738년 다니엘 베르누이의 위험 측정에 관한 저작은 기대효용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 개념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왜 위험을 회피하고 왜 보험에 가입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기여는 현대 금융, 보험 및 위험관리의 토대 가운데 하나이다. 바젤에 정착한 안트베르펜 출신 피난민 향신료 상인 가문이, 은행 자본에 관한 현대 규제인 바젤 협약이 궁극적으로 기대고 있는 수학을 낳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베르누이 가문은 또한 상업적 부를 교육과 공적 봉사로 전환하는 바젤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 준다. 향신료 상인들의 부 덕분에 그 아들들은 공부하고, 여행하고, 당장 소득을 낳지 않는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 가문은 수 세기 동안 바젤 엘리트의 일부로 남아 상인, 시 참사회원, 교수, 목사를 배출했다. 이 가문은 제C부에서 검토하는 바젤의 Daig(다이크)를 특징짓는 상업, 학문, 시민적 참여의 결합을 보여 주는 본보기이다.
주석
- 베르누이 가문, 그 안트베르펜 기원, 프랑크푸르트로의 이주, 그리고 야코프 베르누이의 바젤 정착(1622년 시민권 취득)에 관하여는 스위스 역사사전(HLS)의 항목 “Bernoulli” 참조. ↩
- 야코프 베르누이(1654/55~1705), 요한 베르누이(1667~1748), 다니엘 베르누이(1700~1782) 및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에 관하여는 HLS의 각 인물 항목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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