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하는 바젤 경제
철도 시대는 여러 측면에서 바젤의 경제를 변화시켰다. 철도는 운송비를 낮추고 바젤 산업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 주었다. 원자재, 석탄, 철, 화학물질이 더 저렴하게 들어왔다. 완제품은 먼 곳의 고객에게 더 빨리 운송될 수 있었다. C부에서 서술한 견직 리본 산업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으나 동시에 새로운 경쟁에 직면하였고, 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II장에서 그 기원을 추적하는 화학 산업은 루르와 자르로부터 석탄과 콜타르를 더 저렴하게 공급받으면서 이익을 얻었다.
철도는 바젤의 교역 기능도 바꾸어 놓았다. C부에서 서술한 운송주선 및 위탁매매업은 새로운 운송 방식에 적응하였다. 운송주선회사들은 철도를 이용한 화물 운송을 조직하고, 국경역에서 통관 절차를 처리하며, 이후의 운송을 주선하였다. 바젤은 스위스의 주요 통관 및 환적 거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바젤 철도역의 세관들은 스위스 수출입의 상당 부분을 처리하였다.
산업과 운송의 성장은 노동력을 끌어들였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스위스 농촌과 외국, 무엇보다 바덴과 알자스에서 바젤로 왔다. 노동자 계급이 늘어났고, 새로운 시가지에는 과밀 주거지가 형성되었으며, 사회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최초의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이 창립되면서 노동운동이 조직화되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노동운동은 바젤에서 중요한 정치 세력이 되었다. 1935년 바젤슈타트주(칸톤)는 정부 내에 사회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최초의 스위스 주가 되었다. 이 시기는 Rotes Basel, 즉 ‘붉은 바젤’이라 불리며 1950년까지 지속되었다.1 프라이빗 뱅크, 화학 기업, 보험회사의 도시에 사회민주당 정부가 공존하였다는 사실은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연속성을 결합하는 바젤의 역량을 보여 준다.
주석
- 사회민주당이 바젤슈타트주 정부에서 다수를 차지한 1935년부터 1950년까지의 시기인 ‘붉은 바젤’(Rotes Basel)에 관하여는 HLS, 항목 “Basel-Stadt”, 20세기 부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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