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협약의 기원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의 통제에 관한 바젤협약」은 오늘날 이 도시의 이름을 딴 환경 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국가가 비준한 조약이다. 그 기원은 1980년대에 잇따른 일련의 스캔들에 있다. 선진 공업국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유해폐기물 처리 비용이 상승하자, 중개업자들은 처리 비용이 저렴하고 통제가 허술한 아프리카, 카리브해 및 동유럽 국가로 폐기물을 선적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두 사건이 주목을 받았다. 선박 Khian Sea호는 1986년 소각재를 싣고 필라델피아를 출항하여 하역할 곳을 찾아 약 2년 동안 항해하였고, 화물 일부를 아이티의 한 해변에 투기하였으며, 나머지는 이후 드러난 증거에 따르면 바다에 버렸다. 1988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온 수천 개의 유독성 폐기물 드럼통이 나이지리아의 항구 도시 코코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이는 나이지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의 외교 위기로 이어졌다.1
국제연합 환경계획(UNEP)은 이에 대응하여 전 세계적 조약에 관한 협상을 소집하였다. UNEP 사무총장 Mostafa Tolba의 주도 아래 한 작업반이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협약 초안을 작성하였다. 스위스 정부가 외교회의를 유치하겠다고 제안함에 따라 전권대표회의가 1989년 3월 바젤에서 열렸다. 회의는 1989년 3월 22일 협약을 채택하였고, 협약은 필요한 수의 비준서가 기탁된 후 1992년 5월 5일 발효되었다. 바젤이 선택된 것은 환경 분야에서 스위스가 보여 온 외교적 참여와 국제회의 개최에 관한 이 도시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었다. 동시에 여기에는 일종의 아이러니도 있었다. 바젤은 대규모 화학·제약 산업의 본거지이며, 1986년 11월 1일 슈바이처할레의 Sandoz 창고에서 발생하여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라인강을 오염시킨 화재는 아직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2
많은 독자는 협약이 바젤에서 관리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바젤협약 사무국은 제네바에 있으며, 샤틀렌의 국제환경회관(International Environment House)의 일부를 이루고 UNEP가 관리한다. 협약의 이름은 오로지 채택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몬트리올 의정서, 교토 의정서에도 이름을 붙인 외교 관행에 따른 것이다. 이 점은 강조할 가치가 있는데, 바젤이라는 브랜드의 성격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하나의 체제에 이름을 빌려주었을 뿐, 그 후 그 체제에서 아무런 제도적 역할도 맡지 않았다. 바젤에게 이 이름의 가치는 인지도와 연상에 있으며, 실제 업무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다.3
주석
- 1980년대의 폐기물 거래 스캔들, 특히 Khian Sea호의 항해(1986–1988년)와 나이지리아의 코코 사건(1988년)에 관하여는 Kummer, International Management of Hazardous Wastes: The Basel Convention and Related Legal Rules, 1995, 제1장 및 바젤협약 사무국이 발간한 역사 개요 참조. ↩
- UNEP(사무총장 Mostafa Tolba) 주도의 바젤협약 협상, 전권대표회의 유치에 관한 스위스의 제안, 1989년 3월 22일의 채택 및 1992년 5월 5일의 발효에 관하여는 Kummer, International Management of Hazardous Wastes, 1995 및 협약 본문, 1673 UNTS 57 참조. 1986년 11월 1일의 슈바이처할레 화재에 관하여는 G부 참조. ↩
- UNEP가 관리하는 제네바 소재 바젤협약 사무국(국제환경회관, 샤틀렌)에 관하여는 바젤·로테르담·스톡홀름 협약 사무국의 웹사이트 및 보고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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