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전화 그리고 시장의 속도
철도와 함께 전신이 등장하여 정보 전달을 변화시켰다. 바젤은 스위스 연방 전신망이 개설된 1852년에 그 전신망에 연결되었고, 프랑스와 독일의 전신망에도 연결되었다. 가격 소식, 정치적 사건, 상거래에 관한 정보가 처음으로 파리, 프랑크푸르트 또는 런던에서 바젤까지, 편지로는 며칠이 걸리던 것을 몇 분 안에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1
전신은 바젤 상인과 은행가의 영업을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이제 파리와 런던 거래소의 시세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먼 시장에 주문을 내고, 거래를 확인하며, 소식에 대응할 수 있었다. 바젤, 취리히, 프랑크푸르트, 파리 사이의 가격 차이를 몇 시간 안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 간 차익거래는 더 빠르고 경쟁적이 되었다. 바젤의 은행들은 전신 연결 설비를 설치하고 전보를 송수신할 직원을 고용하였으며, 전보 비용은 회계상 상당한 항목이 되었다.
1880년대에는 전화가 뒤를 이었다. 바젤은 1880년대 초에 첫 전화망을 갖추었으며, 시내의 은행과 회사들이 최초의 가입자에 속하였다. 전화는 은행가, 중개인, 고객 사이의 직접 대화를 가능하게 하였고, 이로써 서면 없이 거래를 교섭할 수 있게 되었다. 전화는 또한 새로운 비밀유지 문제를 낳았다. 통화 내용이 교환원에게 엿들리거나 도청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연방헌법」과 형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통신의 비밀은 민감한 고객 정보를 다루는 은행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전신과 함께 시작된 정보의 가속화는 증권의 전자 거래, 지급의 즉각적 전송, 그리고 마이크로초 단위로 거래를 체결하는 고빈도 거래와 함께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F부에서 보듯이, 국제결제은행(BIS)은 지급·시장인프라위원회를 통하여 이러한 거래의 인프라를 연구하고 그 기준을 정한다. 이처럼 바젤의 금융 정보의 역사는 에라스뮈스 시대의 파발꾼에서 1850년대의 전신을 거쳐 21세기의 디지털 네트워크에 이른다.
주석
- 1852년 스위스 연방 전신망의 개설과 바젤의 연결, 그리고 1880년대 초 바젤의 전화 도입에 관하여는 HLS, 항목 “Telegraf” 및 “Telefon”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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