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금 그리고 전시 경제
전쟁 중 국제결제은행(BIS)의 행보는 전쟁에서 스위스와 그 금융 중심지가 수행한 역할에 관한 보다 넓은 문제의 일부였다. 스위스는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추축국에 둘러싸여 있었고, 석탄, 원자재, 식량을 추축국에 의존하였다. 스위스는 중립과 군대를 유지하였으며 침공당하지 않았다. 스위스 경제는 양측과 계속 교역하였고, 금융 중심지는 양측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1
스위스가 독일에 제공한 가장 중요한 금융 서비스는 금 매입이었다. 독일 제국은행(Reichsbank)은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튀르키예와 같은 중립국들로부터 전략 물자를 구입하기 위하여 유럽 대륙에서 유일하게 자유 태환이 가능한 통화인 스위스 프랑이 필요하였다. 제국은행은 스위스 국립은행(SNB)과 스위스 상업은행들에 금을 매각하여 스위스 프랑을 확보하였다. 스위스 국립은행은 전쟁 중 제국은행으로부터 10억 스위스 프랑이 넘는 금을 매입하였는데, 그 상당 부분은 점령국, 무엇보다 벨기에의 중앙은행들로부터 약탈한 것이었다.2
스위스 국립은행은 전후 자신은 선의로 행동하였으며 금의 출처를 알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역사 연구는 스위스 국립은행 경영진이 1941년부터 독일 금의 약탈 출처에 관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매입을 계속하였음을 밝혀냈다. 1946년의 워싱턴 협정에서 스위스는 법적 의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약탈 금에 관한 연합국의 청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합국에 2억 5,000만 스위스 프랑을 지급하고, 스위스 내 독일 자산을 청산하여 그 수익을 연합국과 나누기로 합의하였다.3
주석
- 제2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 경제와 금융 중심지에 관하여는 독립전문가위원회 스위스–제2차 세계대전(Independent Commission of Experts Switzerland – Second World War)의 최종 보고서, Switzerland, National Socialism and the Second World War, Zurich 2002 참조. ↩
- 전쟁 중 스위스 국립은행의 제국은행으로부터의 금 매입(약 12억 스위스 프랑)과 그중 약탈 금의 비중에 관하여는 독립전문가위원회의 최종 보고서(2002) 및 금 거래에 관한 연구(1998/2002) 참조. ↩
- 스위스와 미국, 영국, 프랑스 간의 1946년 5월 25일 워싱턴 협정(금으로 2억 5,000만 스위스 프랑 지급; 스위스 내 독일 자산의 청산). 독립전문가위원회의 최종 보고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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