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교육에 대한 투자
종교개혁가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교회에는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교육받은 목사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교육은 종교개혁의 핵심 관심사였다. 세속화된 교회 재산의 수입은 상당 부분 학교 재정에 사용되었다. 바젤은 소년들을 대학에 진학하도록 준비시키던 대성당의 라틴어 학교를 재편하고, 읽기, 쓰기 및 산술을 가르치는 독일어 학교를 설립하였다. 1589년 라틴어 학교들은 뮌스터광장의 Gymnasium으로 통합되었다. 이 학교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중 하나인 Gymnasium am Münsterplatz로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1
교육에 대한 투자는 종교개혁가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가져왔다. 읽고 쓰고 셈할 줄 아는 주민은 교역에 종사하고, 장부를 기록하며, 편지를 쓰고, 지시를 따르는 데 더 능하였다. 바젤의 상인 가문들은 아들들을 김나지움과 대학에 보냈다. 그중 다수는 가업에 들어가기 전에 제네바, 하이델베르크, 레이던 또는 파리에서 유학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 바젤 상인의 특징이었던 고전 교육, 상업 훈련 및 국제적 경험의 결합은 종교개혁의 교육 제도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3대에 걸쳐 저명한 수학자 8명을 배출한 베르누이 가문은 이러한 교육이 맺은 결실의 가장 유명한 예이다. 베르누이 가문은 안트베르펜에서 온 프로테스탄트 망명자로서 17세기 초 향신료 상인으로 바젤에 정착하였다. 그들의 아들들은 김나지움과 대학에 다녔다. 그중 몇몇은 수학 교수가 되었고, 확률론, 미적분학 및 역학에 관한 그들의 연구는 근대 과학을 형성하였다. 제V장은 망명자 가문의 예로서 베르누이 가문을 다시 다룬다.
금융 중심지에서 교육이 갖는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은행업, 보험업, 자산관리 및 금융시장 규제에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한 나라의 학교와 대학의 수준은 금융 중심지로서 그 나라가 갖는 경쟁력의 조건 중 하나이다. 기업에서의 도제 수습과 직업학교 수업을 결합한 스위스의 직업교육 제도는 스위스 은행과 보험회사 직원의 상당 부분을 양성한다. 그 기원은 일부는 길드 제도에, 일부는 종교개혁의 교육 개혁에 있다.
주석
- 종교개혁 이후 바젤의 학교 재편과 1589년 뮌스터광장 김나지움의 설립에 관하여는 HLS, “Gymnasium am Münsterplatz” 항목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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