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산맥을 넘는 도로
Augusta Raurica의 번영은 강 못지않게 도로에 의존하였다. 로마인들은 이 식민도시를 제국의 나머지 지역과 연결하는 도로망을 건설하였다. 가장 중요한 도로는 남쪽으로 쥐라산맥을 넘어 스위스 고원으로 이어졌고, 그곳에서 그랑생베르나르 고개에서 출발하여 헬베티족의 수도인 아벤티쿰, 즉 오늘날의 아방슈를 지나 빈도니사와 라인강에 이르는 도로와 합류하였다. 또 다른 도로는 서쪽으로 부르고뉴 관문을 지나 오늘날의 망되르인 에파만두오두룸과 오늘날의 브장송인 베손티오로, 그리고 그곳에서 리옹과 지중해로 이어졌다. 세 번째 도로는 라인강 좌안을 따라 북쪽으로 오늘날의 스트라스부르인 아르겐토라테와 오늘날의 마인츠인 모곤티아쿰으로 이어졌다.1
쥐라산맥 횡단은 남쪽 경로의 핵심 구간이었다. 로마인들은 상·하 하우엔슈타인 고개를 이용하였으며, 이곳에서는 암반에 새겨진 바퀴 자국을 비롯한 로마 도로 건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고개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쥐라산맥을 관통하는 철도 터널이 건설될 때까지 바젤과 스위스 고원 사이의 주요 경로로 남게 된다. 그 철도 터널은 스위스 중앙철도의 일부로 1858년에 개통된 구 하우엔슈타인 터널과 1916년에 개통된 하우엔슈타인 기저 터널이다.2 철도 터널들은 바젤을 1882년에 개통된 고트하르트 노선의 북쪽 관문으로 만들었고, 알프스를 관통하여 이 도시를 이탈리아와 연결하였다. D부에서는 19세기에 철도가 바젤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검토한다.
로마의 도로는 물리적 기반시설 이상의 것이었다. 이정표, 말을 교체하는 역참과 여관을 갖춘 이 도로들은 제국 우편인 cursus publicus가 이용하였다. cursus publicus는 공문과 관리들을 제국 전역으로 실어 날랐으며, 그 속도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다시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금융 중심지에 있어 통신의 속도와 신뢰성은 상품의 운송만큼이나 중요하다. 상인과 은행가는 정보로 살아간다. 가격에 관한 정보, 거래 상대방의 지급능력에 관한 정보, 정치적 사건에 관한 정보가 그것이다. 금융 중심지로서 바젤의 역사는 로마 도로에서 근세 초기의 우편 경로, 19세기의 전신, 오늘날의 데이터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통신 네트워크 속에서 이 도시가 차지한 위치의 역사이기도 하다.
주석
- Augusta Raurica 주변의 로마 도로망(아벤티쿰과 그랑생베르나르로 향하는 도로, 베손티오와 루그두눔으로 향하는 도로, 라인강을 따라 아르겐토라테와 모곤티아쿰으로 향하는 도로)에 관하여는 Berger, Führer durch Augusta Raurica, 2012; HLS, 항목 “Römerstrassen” 참조. ↩
- 하우엔슈타인 고개와 철도 터널(구 하우엔슈타인 터널 1858년, 하우엔슈타인 기저 터널 1916년)에 관하여는 HLS, 항목 “Hauenstein”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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