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 국경의 난민
독일 및 점령된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바젤은 전쟁 시기 스위스 난민 정책이 실행된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나치 박해를 피한 난민들, 무엇보다 유대인들은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들어오려 하였고, 스위스 당국은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돌려보낼지를 결정하였다.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 스위스는 스위스 국경 공무원들이 독일 유대인을 식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여권에 “J”를 표시해 달라고 독일에 요청하였다. 이에 독일은 그 날인을 도입하였다.1 강제 이송이 절정에 달한 1942년 8월, 스위스 당국은 인종적 이유만으로 박해받는 난민에게 국경을 폐쇄하고, 인종적 이유에 의한 박해는 망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독립전문가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of Experts)는 전쟁 중 스위스 당국이 수천 명의 난민을 돌려보내거나 추방하였고 그중 상당수가 나중에 살해되었으며, 한편으로 수만 명의 다른 난민을 받아들였다고 추산하였다.2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젤에서도 개인과 단체들이 난민을 도왔다. 그중에는 자체 비용으로 난민을 지원한 유대인 공동체와, 규정을 관대하게 해석한 일부 공무원들이 있었다. 연방평의회가 1995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전쟁 중 스위스의 난민 정책은 스위스 금융 중심지의 도덕사의 일부이다. 난민을 돌려보낸 바로 그 당국이, 박해받은 사람들과 그 박해자들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한 자산을 보호하였기 때문이다.
주석
- 스위스의 요청에 따라 1938년 10월 독일이 도입한 독일 유대인 여권의 “J” 날인에 관하여는 독립전문가위원회의 최종 보고서 및 그 연구 Switzerland and Refugees in the Nazi Era(1999) 참조. ↩
- 제2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가 받아들이고 돌려보낸 난민의 수에 관하여는 독립전문가위원회의 연구 Switzerland and Refugees in the Nazi Era, 1999 및 2002년 최종 보고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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