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신용: 가옥 정기금과 상인 조합
지대는 사적 신용의 주된 수단이기도 하였다. 집을 사거나, 작업장을 차리거나, 교역 사업에 자금을 대기 위해 자본이 필요한 시민들은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지대를 매도하였다. 매수인은 그 집을 담보로 하는 연간 지급, 곧 Zins 또는 Gült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였으며, 이 권리는 소유권이 바뀌어도 부동산에 따라다녔다. 중세 바젤의 집 한 채에는 교회, 종교 재단, 사인 등 여러 채권자를 위한 여러 개의 지대가 설정될 수 있었고, 도시의 등기부는 이러한 부담을 기록하였다.1
이러한 부동산 신용 제도는 현대 저당권의 조상이다. 1907년 「민법」에 성문화된 스위스 부동산법은 저당권(Grundpfandverschreibung), 저당증권(Schuldbrief), 그리고 2012년 폐지되기 전까지는 중세 지대에서 직접 유래한 토지 부담의 한 형태인 Gült를 인정하였다.2 저당증권, 곧 Schuldbrief는 인적 채권과 토지 부담을 결합한 것으로, 유통 가능한 유가증권으로 발행되거나 토지등기부에 등기될 수 있으며, 오늘날 스위스에서 부동산 금융의 주된 수단이다. 경제 규모 대비로 세계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스위스 모기지 시장은 이처럼 바젤과 같은 도시의 중세 지대 시장에까지 뿌리가 닿는 법적 형식 위에 서 있다.
상업 신용은 다른 형태를 취하였다. 상인들은 상품 대금의 지급 유예를 통해 서로 신용을 제공하였고, 이를 장부에 기록하였다. 그들은 Gesellschaften이라는 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여기서 여러 조합원이 자본을 출자하고 이익과 손실을 분담하였다. 14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활동한 대(大)라벤스부르크 상사, 베른과 장크트갈렌의 Diesbach-Watt 상사와 같은 상부 슈바벤과 스위스 고원 지대의 대상사들은 유럽 전역에 지점과 대리인을 두고 아마포, 향신료, 금속, 신용을 거래하였다.3 바젤 상인들도 이 상업 세계에 참여하였다. 그 세계에서 바젤은 이탈리아, 라인란트, 부르고뉴를 잇는 교통로상의 위치 덕분에 출신이 다양한 상인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이탈리아 상인들이 주화를 운반하지 않고도 유럽 전역으로 자금을 이전할 수 있게 해 준 수단인 환어음은 바젤에도 알려져 있었으나, 바젤 공의회가 이탈리아 은행가들을 도시로 불러들이기 전까지는 그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다음 장에서는 이 만남을 살펴본다.
주석
- 중세 바젤에서 가옥을 담보로 한 사적 지대(Gülten, Bodenzinse)와 그 등기에 관하여는 Staatsarchiv Basel-Stadt의 Historisches Grundbuch; Harms, 1909–1913 참조. ↩
- Gült(구 「스위스 민법」 제847조 이하)는 2012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물권법 개정으로 폐지되었으며, 기존의 Gülten은 전환되었다. 개정에 관한 연방평의회의 교서(BBl 2007 5283) 참조. ↩
- 대라벤스부르크 상사(Grosse Ravensburger Handelsgesellschaft, 1380년경–1530년경)와 Diesbach-Watt 상사에 관하여는 HLS, 항목 “Ravensburger Handelsgesellschaft” 및 “Diesbach-Watt-Gesellschaft” 참조. ↩
일반적인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글은 법률 또는 세무 자문에 해당하지 않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자문을 대체하지 않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위임 관계를 성립시키지 않습니다. 이 글은 2026년 10월 기준의 법적 상황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