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 구제와 새로운 사회 질서
종교개혁가들은 빈민 구호를 매우 중시하였다. 그들은 중세의 자선 체계를 비판하였다. 이 체계는 개인이 걸인에게 주는 희사, 수도원과 신심회의 자선 활동, 그리고 기부자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금에 의존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이 체계는 구걸과 나태를 조장하고, 직업적 걸인에게 보상을 주며, 빈민의 필요보다 기부자의 영적 이익에 더 봉사하였다. 그들은 공적 빈민 구호 체계를 제안하였다. 이 체계는 시민 공동체가 조직하고, 교회 재산과 기부금으로 재원을 마련하며, 일할 수 없는 구호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과 일할 수 있으나 일하려 하지 않는 구호받을 자격이 없는 빈민을 구별하는 관리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1
바젤은 1529년 이후 이러한 체계를 수립하였다. 희사를 모으고 분배하기 위하여 빈민 구호청인 Almosenamt가 설치되었고, 그 재원은 세속화된 교회 재산의 수입과 교회에서의 헌금으로 마련되었다. 구걸은 금지되거나 엄격히 규제되었다. 외국인 걸인은 추방되었다. 일할 수 없는 빈민은 정기적인 지원을 받았고, 일할 수 있는 자는 일할 의무를 졌다. 병원은 병자와 노인을 돌보기 위하여 재편되고 확장되었다.
빈민 구호의 개혁은 노동과 빈곤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반영한 초기 형태의 사회정책이었다. 노동은 의무이자 소명으로, 나태는 죄로 여겨졌다. 빈곤은 공동체가 구제할 의무를 지는 동시에 예방할 의무도 지는 상태로 여겨졌다. 훗날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연결시킨 이러한 태도는 바젤의 경제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근면, 절약 및 자본 축적을 장려하였다. 또한 정직한 영업의 추구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주석
- 1520년대 프로테스탄트 도시들(예: 1522년 뉘른베르크, 1525년 취리히, 1529년 이후 바젤)에서의 빈민 구호 개혁과 구호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과 없는 빈민의 구별에 관하여는 근세 빈민 구호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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