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칸톤)의 분리, 철도 그리고 새로운 바젤 경제 — 결론
결론
19세기는 바젤을 리본 상인들의 상업 도시에서 산업·금융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오랜 갈등의 결과인 1833년의 주(칸톤) 분할은 두 개의 반주(半州)를 만들어 냈고, 재통합을 위한 거듭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분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철도는 184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1850년대 바덴에서 바젤에 도달하였다. 1852년 바젤에서 설립된 스위스 중앙철도는 하우엔슈타인 터널을 통해 도시를 스위스 고원과 연결하였다. 철도 자금 조달을 계기로 바젤의 프라이빗 뱅커들은 1854년 컨소시엄을 구성하였고, 한편 취리히는 알프레트 에셔와 Kreditanstalt를 통해 스위스 상업은행업을 주도하게 되었다. 1882년 고타르트 노선의 개통으로 바젤은 주요 알프스 횡단 노선의 북쪽 관문이 되었다. 20년 뒤인 1902년 철도 국유화로 민간 철도 시대는 막을 내렸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성벽이 헐렸고, 노동계급이 조직되었으며, 주가 가스, 수도, 전기와 교통 서비스를 넘겨받았다. 연방 관세 제도는 바젤을 국내 최대의 세관 소재지로 만들었다. 1870년과 1914년의 전쟁은 전투를 도시의 문턱까지 끌어왔으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감독 기구들은 현대의 최종용도 통제를 예고하였다. 20세기 초에는 라인강 항행이 바젤로 돌아왔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현대 바젤의 토대가 된 산업, 곧 화학 산업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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