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필경사와 인쇄의 준비
공의회는 막대한 양의 종이를 소비하였다. 공의회의 상서원은 수천 건의 문서를 발급하였고, 회기마다 의사록과 교령이 작성되었으며, 신학자들은 논고를 썼고, 구성원들은 본국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필사본은 필사되고 수집되고 교환되었다. 종이에 대한 수요는 바젤에 제지소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종이는 이슬람 세계로부터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에 들어왔다. 알프스 이북 최초의 제지소들은 14세기 후반에 설립되었다. 바젤 최초의 제지소는 상인 하인리히 할비젠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공의회 기간인 1430년대에 장크트 알반 운하의 수력을 이용하여 이를 세웠다. 1450년대에는 피에몬테 출신의 제지업자 가문인 갈리치아니 가문이 바젤에 정착하여 장크트 알반 계곡을 제지 생산의 중심지로 발전시켰으며, 이곳은 수세기 동안 이 지역에 종이를 공급하였다.1 그들의 제지소 가운데 하나에는 현재 바젤 제지소, 곧 스위스 종이·문자·인쇄 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이곳에서는 지금도 손으로 종이를 만든다.
제지업은 1460년대 이후 바젤에서 발달한 인쇄업의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 인쇄에는 대량의 종이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도시 안에 제지소가 있다는 것은 바젤 인쇄업자들에게 경쟁상의 이점이 되었다. 공의회는 또한 텍스트의 생산과 유통에 익숙한 서기, 필사가 및 학자들의 인구와, 유럽의 지적 중심지들과의 인맥 네트워크를 남겼다. B부는 이러한 조건들이 어떻게 바젤을 16세기 유럽 인쇄의 수도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는지를 살펴본다.
장크트 알반 계곡의 제지소들은 또한 바젤에서 수력을 산업적으로 이용한 초기 사례이자, 해외에서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온 이민자들이 세운 산업의 초기 사례이다. 갈리치아니 가문은 피에몬테에서 왔다. 이후 견직 리본 제조업자들이 종교 난민으로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오게 된다. 이민자들이 가져온 산업 혁신이라는 패턴은 바젤의 역사 전체에 걸쳐 되풀이되며, 창업자 가운데 여러 명이 도시 외부 출신이었던 19세기 화학 산업에까지 이어진다.
주석
- 바젤 제지 생산의 시작(하인리히 할비젠, 1430년대)과 피에몬테 출신 갈리치아니 가문(1453년부터)에 관하여는 HLS, 항목 “Papier” 및 “Galliziani”; Basler Papiermühle(스위스 종이·문자·인쇄 박물관)의 간행물 참조. 날짜는 확인을 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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