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유행
견직 리본 시장은 유행의 시장이었다. 리본은 모자, 드레스, 보닛, 신발에 달거나 머리에 장식했다. 또한 제복, 군대 휘장, 의례복을 장식했고, 가구와 마차의 장식 테두리로도 쓰였다. 리본의 색상, 폭, 문양, 질감은 계절에 따라, 그리고 궁정과 도시의 취향에 따라 바뀌었다. 바젤 상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예견하고, 새로운 문양을 고안하여 신속하게 생산하고, 유행이 다시 바뀌기 전에 시장에 공급해야 했다.
주요 시장은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네덜란드, 잉글랜드, 이탈리아였고, 18세기부터는 아메리카 대륙이 더해졌다. 파리가 유럽 전체의 유행을 주도했기 때문에, 바젤 상인들은 파리의 유행을 면밀히 추적하고, 디자이너와 대리인을 파리에 파견했으며, 리옹과 생테티엔 제조업자들의 문양을 모방하거나 변형했다.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보케르의 정기시는 중요한 판로였다. 그 밖에도 상인들은 주요 상업 도시에 거래처와 대리인을 두었다.
아메리카 시장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에 점점 더 중요해졌다. 미국이 독립한 뒤 바젤 리본은 뉴욕, 필라델피아 및 기타 미국 도시로 대량 수출되어 그곳에서 영국 및 프랑스 제품과 경쟁했다. 아메리카 시장은 규모가 크고 성장하고 있었으며 유럽 시장보다 전통에 덜 얽매여 있었다. 이 시장은 19세기 전반 바젤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흡수했다.1
유행에 대한 의존 때문에 리본 거래는 위험한 사업이었다. 유행을 잘못 판단한 상인은 팔리지 않는 리본 재고를 대량으로 떠안을 수 있었고, 수입국의 관세가 바뀌면 하룻밤 사이에 시장이 닫힐 수도 있었다. 외국산 견직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프랑스의 보호무역 정책과, 교역을 교란한 18세기 후반 및 19세기 초의 전쟁들은 바젤 리본 산업에 거듭 위기를 불러왔다. 살아남은 상인은 시장을 다변화하고, 준비금을 유지하며, 위험을 신중하게 관리한 이들이었다.
주석
- 18세기 후반과 19세기 바젤 견직 리본의 미국 수출에 관하여는 바젤 리본 산업사 및 스위스–미국 교역사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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