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적 인문주의와 법학의 쇄신
인문주의 운동은 법학 연구를 변모시켰다. 중세 법학자들은 12세기 이래 축적된 주석과 주해를 통하여 로마법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텍스트의 역사적 맥락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방법으로 로마법을 당대의 문제들에 적용하였다.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알치아토와 프랑스의 기욤 뷔데에서 시작된 인문주의 법학자들은 로마법의 원전을 복원하고, 이를 역사적·문헌학적 맥락에서 이해하며, 중세 해석이 덧붙인 요소들로부터 정화하고자 하였다. 법학적 인문주의 또는 mos gallicus, 곧 프랑스식 방법으로 알려진 이 운동은 바젤과 울리히 차지우스가 가르치던 이웃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지지자를 얻었다.1
프라이부르크에서 차지우스에게, 아비뇽에서 알치아토에게 배운 보니파키우스 아메르바흐는 바젤의 대표적인 법학적 인문주의자가 되었다. 로마법 교수이자 시 법률고문이며 시의회의 자문역으로서 그는 텍스트에 대한 인문주의적 접근과 도시의 실무적 필요를 결합하였다. 공법과 사법의 여러 문제에 관하여 그가 제시한 법률 의견서는 인문주의자들의 학식을 구체적 문제의 해결에 활용한 법률가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종교개혁으로 다시 제기된 이자의 문제였다. 아메르바흐는 이자와 연금의 적법성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하였으며, 이는 제IV장에서 살펴본다.
법학적 인문주의의 유산은 텍스트에 대한 존중과 그 목적 및 맥락에 대한 주의를 결합하는 스위스 법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07년의 「스위스 민법」(CC)은 법률에 규정이 없는 경우 법관이 자신이 입법자라면 정하였을 규칙에 따라 판단하도록 지시한다.2 전 세계의 비교법학자들이 높이 평가하는 이 규정은 법관의 추론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다. 그 신뢰는 법을 합리적 질서로 이해하는 인문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석
- 법학적 인문주의(mos gallicus)와 그 대표자인 알치아토, 뷔데, 차지우스, 그리고 보니파키우스 아메르바흐를 통한 바젤에서의 수용에 관하여는 법학사에 관한 문헌 참조. ↩
- 「스위스 민법」 제1조 제2항(SR 210): 법률에 규정이 없는 경우 법원은 관습법에 따라, 관습법도 없는 경우에는 자신이 입법자라면 정하였을 규칙에 따라 판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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