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아머바흐: 학자 출신 인쇄업자
바젤 최초의 위대한 인쇄업자는 요한 아메르바흐였다. 그는 1440년경 프랑켄 지방의 아모르바흐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이름은 이 지명에서 유래한다. 아메르바흐는 파리에서 공부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아마도 베네치아나 뉘른베르크에서 인쇄술을 배웠다. 그는 1470년대에 바젤에 정착하여 시민권을 취득하고 인쇄소를 열었으며, 이 인쇄소는 15세기 말까지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쇄소가 되었다.1
아메르바흐는 학문과 사업을 결합하였다. 그는 신학 및 교부 저작의 대규모 정밀 편집본을 전문으로 하였다. 라틴어 성경, 교부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그리고 나중에는 히에로니무스의 저작이 그것이다. 이러한 판본에는 유럽 전역의 수도원 도서관에서 필사본을 수집하고, 이문(異文)을 대조하고, 학식 있는 편집자들이 본문을 교정하는 작업이 필요하였다. 이 판본들은 정확성을 중시하는 성직자, 수도원, 대학의 시장을 겨냥하였다. 아메르바흐는 이 판본들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기관 구매자들의 안정적인 수요를 기대하고 긴 생산 주기와 높은 비용의 위험을 감수하였다.
아메르바흐는 또한 가족에게도 투자하였다. 그는 세 아들 브루노, 바실리우스, 보니파키우스가 자신의 판본의 학술 편집자가 되도록 할 생각으로 이들을 파리와 다른 곳으로 유학 보냈다. 브루노와 바실리우스가 히에로니무스 판본 작업을 하는 동안, 보니파키우스는 바젤 대학교의 로마법 교수, 에라스뮈스의 친구이자 상속인, 그리고 16세기 중반 이 도시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아메르바흐 가문은 바젤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양상, 즉 두 세대에 걸쳐 상업적 부가 교육, 학문, 공직으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바젤 대학교 도서관에 보존되어 기념비적인 편집본으로 간행된 아메르바흐 가문의 서신은 인쇄와 인문주의의 역사에 관한 가장 풍부한 사료 가운데 하나이다.2 이 서신은 저자 및 편집자와의 협상, 종이 구입, 박람회로의 서적 발송, 채권 회수, 그리고 가문의 재정 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1500년경 바젤 인쇄업자의 사업을 상세히 재구성할 수 있다.
주석
- 요한 아메르바흐(1440년경–1513년), 그의 파리 유학, 바젤 정착 및 인쇄소에 관하여는 HLS, 항목 “Amerbach, Johann”; 아메르바흐 서신 편집본(Die Amerbachkorrespondenz, Hartmann/Jenny 편) 참조. ↩
- Die Amerbachkorrespondenz, Alfred Hartmann 및 Beat Rudolf Jenny 편, Basel 1942 이하, 다수의 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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