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igy: 염료 상인에서 염료 제조업체로
C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Geigy 가문은 1758년부터 염료, 약재 및 화학제품을 거래하였다. 1850년대 후반 가족 회사의 대표였던 Johann Rudolf Geigy-Merian은 합성염료 생산을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클라인바젤의 로젠탈에 있는 공장에서 푹신을 생산하던 염료 제조업자 Johann Jakob Müller-Pack과 협력하였다.1
푹신 생산에는 산화제로 비산(arsenic acid)이 사용되었고, 그 결과 다량의 비소를 함유한 공정 폐기물이 남았다. 1863년과 1864년 클라인바젤의 Müller-Pack 공장 인근 우물들이 비소에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고, 이로 인해 주민들이 병에 걸렸다. 당국의 조사 후 공장주는 기소되어 손해배상 명령을 받았으며, 공장은 문을 닫거나 공정을 바꾸어야 했다.2 이 사건은 화학산업 최초의 환경 스캔들 중 하나였으며, 바젤의 화학 공장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 Geigy는 이 사업을 인수하여 스위스의 선도적인 염료 생산자 중 하나로 발전시켰다.
1860년대의 비소 사건은 바젤 화학산업과 그 환경 사이의 오랜 갈등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화학산업은 한 세기 넘게 라인강과 토양에 폐기물을 배출하였고, 도시와 지역 곳곳에 오염 부지를 남겼으며, 때때로 사고를 일으켰다. 가장 심각한 사고는 1986년 11월에 발생하였다. 슈바이처할레에 있던 Sandoz사의 창고에서 화재가 일어나 유독 화학물질이 라인강으로 유출되었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친 강 유역에서 물고기가 죽었다. G부에서는 슈바이처할레 사고가 화학산업 규제와 기업 책임에 미친 영향을 검토한다.
주석
- Geigy 가문이 Johann Jakob Müller-Pack과 협력하여 합성염료 생산을 시작한 것(1850년대 후반)과 J. R. Geigy의 발전에 관하여는 스위스 역사사전(HLS), “Geigy” 항목 참조. ↩
- 클라인바젤에 있던 Johann Jakob Müller-Pack의 푹신 공장 인근 우물의 비소 오염(1863/64), 이에 따른 법적 절차와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바젤 화학산업의 역사와 그 환경 영향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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