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신용에서 은행업으로: 상인 은행가 상사 — 결론
결론
18세기와 19세기 초에 바젤의 상사(商社)들은 은행이 되었다. 시립 환전소가 쇠퇴하자 민간 상사들이 그 기능을 넘겨받았다. 바젤의 자본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과 오스트리아의 공공부채와 무역회사 주식에 투자되었다. 이 자본은 로(Law)의 체제 붕괴, 남해 거품 사건과 1797년 프랑스 국가 파산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위탁매매업과 운송주선업은 바젤을 통과 교통의 거점으로 만들었고, 유럽의 대형 운송주선회사 가운데 하나인 Danzas를 탄생시켰다.
1854년 컨소시엄을 구성한 상사들, La Roche & Co와 Dreyfus Söhne & Cie 등 바젤 최초의 프라이빗 뱅크들은 파트너가 무한책임을 지는 가족 합명회사였다. 이들은 어음을 할인하고,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하고, 증권을 거래하고, 가문들의 자산을 관리하였다. 무한책임과 파산의 기억이 이들의 보수적인 위험 문화를 형성하였다. 1809년 GGG가 설립한 저축은행은 더 넓은 계층의 주민을 위해 봉사하였다. 철도 자금 조달을 위한 1854년의 컨소시엄은 UBS의 뿌리 가운데 하나인 Basler Bankverein의 1872년 설립을 준비하였다. 다음 장에서는 바젤 상업사의 어두운 면, 곧 대서양 경제와 노예무역에 대한 바젤의 관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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