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도시에서 요새로: 라인강의 고대 후기
아우구스타 라우리카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기 3세기 중엽부터 라인강 상류와 도나우강의 로마 국경은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260년경 로마인들이 라인강과 도나우강 너머의 영토, 즉 Agri Decumates를 포기하자 라인강은 다시 제국의 국경이 되었다. 아우구스타 라우리카는 알레만니족의 침입과 제국 내부의 위기로 타격을 입었다. 상부 도시는 일부 버려졌고, 카스텔렌 고원에는 요새가 축조되었다.
서기 300년경 사두정치 시기에 오늘날의 카이저아우크스트에 해당하는 라인강 기슭에 새로운 요새인 Castrum Rauracense가 건설되었다. 이 요새는 이 지역의 군사·행정 중심지가 되었고, 4세기에는 legio I Martia의 수비대가 주둔하는 곳이 되었다.1 민간인들은 성벽 안이나 그 바로 주변에 모여 살았다. 같은 시기에 바젤의 뮌스터 언덕도 다시 요새화되어, 옛 켈트 거주지 자리에 후기 로마 시대의 작은 요새가 들어섰다.
바젤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374년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바실리아 인근에 요새를 짓게 했으며, 현지 주민들이 이를 Robur라고 불렀다고 전한다.2 바실리아라는 이름은 아마도 그리스어나 라틴어 인명, 또는 “왕의”를 뜻하는 그리스어 basileia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다만 정확한 어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 이름이 군사 건설 계획과 관련하여 등장한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고대 후기의 바젤은 국경 초소였으며, 로마인들이 4세기에 보덴호에서 바젤 일대에 이르기까지 라인강을 따라 세운 요새와 망루의 사슬 가운데 일부였다. 이러한 망루 가운데 여러 곳이 라인강의 스위스 쪽 기슭을 따라 발견되었다.
그리스도교는 4세기에 이 지역에 전해졌다. 라우라키족의 주교는 346년 쾰른 공의회의 것으로 전해지는 명부에 언급되는데, 이 명부의 진위는 논란이 있다. 주교좌는 원래 Castrum Rauracense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바젤로 옮겨졌다. 바젤에서 주교들의 존재가 확실히 입증되는 것은 8세기부터이다.3 주교구의 이전은 바젤이 이 지역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는 역사의 출발점이 된다.
주석
- Castrum Rauracense와 legio I Martia에 관해서는 HLS(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 항목 “Kaiseraugst” 및 “Augusta Raurica”; Berger, Führer durch Augusta Raurica, 2012 참조. ↩
- Ammianus Marcellinus, Res gestae XXX.3.1: 발렌티니아누스는 “prope Basiliam, quod appellant accolae Robur”에 munimentum을 건설한다. Robur의 위치 비정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HLS, 항목 “Basel (Gemeinde)” 참조. ↩
- 쾰른 공의회(346년)의 것으로 전해지는 주교 명부와 주교좌의 카이저아우크스트에서 바젤로의 이전에 관해서는 HLS, 항목 “Basel (Fürstbistum)” 및 “Basel (Diözese)” 참조. 쾰른 명부의 진위는 논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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