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자금 조달
철도 건설에는 스위스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였다. 철도 회사는 수입을 올리기도 전에 토지를 매입하고, 제방·교량·터널을 건설하고, 선로를 깔고, 역을 짓고, 기관차와 차량을 확보해야 하였다. 하우엔슈타인 터널 하나에만 수백만 프랑이 들었다. 자본은 스위스와 해외, 무엇보다 프랑스의 투자자들에게 매각된 주식과 채권에서 나왔다. 1850년대에 파리의 은행과 투자자들은 유럽 철도의 주요 자금 공급자였다.1
바젤의 프라이빗 뱅커들은 제한된 자원으로 이러한 수요에 직면하였다. 바젤의 어떤 은행도 단독으로는 철도 회사의 주식과 채권을 인수하거나 공사 중에 필요한 거액을 선대할 수 없었다. C부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1854년 바젤의 프라이빗 뱅크 여섯 곳이 철도와 기타 대규모 사업에 공동으로 자금을 대기 위해 컨소시엄인 Bankverein을 결성하였다. 이 컨소시엄은 중앙철도와 다른 회사들의 자금 조달에 참여하여, 그 증권을 고객과 거래 은행들에게 배정하였다.
철도 금융은 바젤에게 현대 은행업의 학교였다. 철도 금융에는 폭넓은 대중을 상대로 한 증권 배정, 대규모 신디케이트의 운영, 복잡한 사업의 평가, 외국 은행과의 협력, 그리고 실패할 수 있는 회사의 위험 관리가 필요하였다.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수입이 설립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여러 스위스 철도 회사가 실제로 파산하거나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였다. 투자자들은 손실을 입었고, 증권을 배정한 은행들은 비판에 직면하였다. 이 경험은 민간 자본시장을 통한 인프라 금융의 잠재력과 위험을 함께 보여 주었다.
주석
- 1850년대 스위스와 해외, 특히 프랑스에서 배정된 주식과 채권에 의한 스위스 철도의 자금 조달에 관해서는 스위스 철도사 및 스위스 은행사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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