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9년 2월
결정적 위기는 1528년에서 1529년에 걸친 겨울에 찾아왔다. 1528년 베른의 종교개혁 채택은 연방 내 세력 균형을 바꾸어 놓았고 바젤의 개혁파를 고무하였다. 1528년 12월 길드들은 무장한 채 모여 미사 폐지를 요구하였고, 시의회는 양보하였으나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았다. 1529년 2월 초 길드들은 다시 모였다. 수천 명의 무장한 사람들이 시장 광장에 모여 가톨릭 시의원들의 축출과 미사의 즉각적인 폐지를 요구하였다.1
무장한 시민들의 압력 아래 시의회는 굴복하였다. 가톨릭 시의원들이 시의회를 떠나거나 축출된 뒤, 남은 의원들은 요구에 동의하였다. 2월 9일 시민 무리가 대성당(뮌스터)과 다른 교회들에 들어가 성상, 제단과 조각상을 파괴하였다. 파괴는 광범위하였으나, 일부 예술품은 보존되었고 다른 일부는 매각되거나 반출되었다. 목조 성상들은 대성당 광장에서 불태워졌는데, 연대기 작가들에 따르면 그 불은 몇 시간 동안 탔다.
1529년의 성상 파괴는 중세 바젤의 예술 유산 상당 부분을 파괴한 폭력 행위였다. 그것은 또한 옛 종교 질서, 그리고 교회가 성상과 보물에 축적해 온 부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 상징적 행위이기도 하였다. 하인리히 2세와 다른 기증자들이 봉헌한 귀중품을 포함한 대성당 보물은 시의회가 확보하여 보관하였다. 이 보물은 1833년 주(칸톤)가 분할될 때까지 시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분할 시 보물은 바젤슈타트주와 바젤란트주 사이에 나뉘었고, 바젤란트주는 자신의 몫을 매각하여 그것은 수집가들과 박물관들 사이로 흩어졌다.2 주의 분리 후 나뉘고 매각된 대성당 보물의 이야기는 정치적 격변기에 문화재가 겪는 운명의 한 사례이며, 이 주제는 H부에서 다시 다룬다.
주석
- 1528년 12월과 1529년 2월 길드의 무장 집회와 그 요구에 관하여는 Wackernagel, 제3권, 1924; Burckhardt, 1942 참조. ↩
- 종교개혁 이후 바젤 대성당 보물의 운명, 1833년 이후 바젤슈타트주와 바젤란트주 사이의 분할, 그리고 1836년 바젤란트주 몫의 매각에 관하여는 HLS, 항목 “Basler Münsterschatz”; Historisches Museum Basel의 간행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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