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 성벽, 전쟁과 영토
시의 지출은 세 항목이 지배하였다. 첫째는 방위였다. 1356년의 지진 이후 시는 오래된 내성벽 밖에 형성된 교외 지역을 둘러싸는 새로운 외성벽을 건설하였다. 14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이 공사는 당시 최대 규모의 공공사업 가운데 하나였으며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였다.1 그 성문 가운데 슈팔렌토어, 장크트알반토어, 장크트요한토어의 세 곳이 남아 있다. 성벽은 19세기까지 유지·현대화되었으며, 19세기에 도시 확장을 위해 대부분 철거되었다.
둘째는 전쟁이었다. 바젤은 이 지역의 분쟁에 참여하였다. 합스부르크가에 맞서, 준트가우와 브라이스가우의 귀족들에 맞서, 1444년 이 지역을 침공한 아르마냐크군에 맞서 싸웠고, 스위스 동맹자들의 동맹으로서 1474년부터 1477년까지의 부르고뉴 전쟁과 1499년의 슈바벤 전쟁에도 참여하였다. 전쟁에는 병사, 무기, 보급품, 그리고 동맹자에 대한 보조금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전쟁은 임시 지출의 주된 원인이었다.
셋째는 권리와 영역의 매입이었다. 시는 영주권, 관직, 수입을 취득하기 위해 주교, 귀족 가문, 합스부르크가에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였다. 이러한 매입은 투자였다. 시에 수입과 권력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재원은 대부분 차입으로 조달되었고, 이는 시의 채무를 증가시켰다.
주석
- 1356년 이후 건설되어 1398년경 완공된 바젤 외성벽과 현존하는 성문(Spalentor, St. Alban-Tor, St. Johanns-Tor)에 관하여는 HLS, 항목 “Basel (Gemeinde)”; Denkmalpflege Basel-Stadt의 간행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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