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 속의 유럽
30년 동안 바젤은 유럽 통화 통합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1964년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들은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위원회(Committee of Governors of the Central Banks of the Member States)를 창설하였다. 이 위원회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회의를 열었고, 사무국 업무를 BIS의 직원에게 의존하였다. 공동체가 1972년 유럽 “스네이크”를, 1979년 유럽통화제도(EMS)를 도입하였을 때, BIS는 유럽통화협력기금(European Monetary Cooperation Fund)의 대리인 역할을 하였다. 이 기금은 참가 중앙은행들 사이의 초단기 금융과 유럽통화단위(ECU)를 관리하였다.1
단일 통화를 위한 결정적인 준비 작업도 바젤에서 이루어졌다.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가 위원장을 맡은 위원회는 1989년 4월 경제통화동맹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회의의 대부분을 BIS에서 개최하였다. 위원의 대다수는 매월 그곳에서 회합하던 중앙은행 총재들이었다. 보고관에는 BIS 직원인 군터 베어(Gunter Baer)와 토마소 파도아스키오파(Tommaso Padoa-Schioppa)가 포함되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전신인 유럽통화기구(European Monetary Institute)는 1994년 1월 바젤에서 업무를 시작하였고, 같은 해 11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으로 이전하였다. 이 기구의 초대 총재인 알렉상드르 람팔뤼시(Alexandre Lamfalussy)는 BIS에서 곧바로 부임하였으며, 그곳에서 사무총장을 지냈다. 해럴드 제임스(Harold James)는 유럽 통화동맹의 역사에 관한 저서에서 유로의 설계가 바젤 회의의 네트워크와 문화에 얼마나 많이 빚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2
주석
- 총재위원회(1964년 5월 8일 이사회 결정 64/300/EEC로 설립)와 유럽통화협력기금(1973–1993)의 대리인으로서 BIS의 역할에 관하여는 해당 시기의 BIS 연차보고서; Harold James, Making the European Monetary Union, Harvard, 2012 참조. ↩
- Committee for the Study of Economic and Monetary Union, Report on Economic and Monetary Union in the European Community (Delors Report), 1989. BIS의 역할과 유럽통화기구의 바젤에서의 첫 몇 달에 관하여는 James, 2012, 제7장 및 제8장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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