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바젤과 그 긴 안목
이 책은 라인강이 북쪽으로 꺾이는 라인강 굽이에서 시작하였다. 그곳은 켈트인 정착민, 로마 병사, 중세 상인들이 강을 건너고, 교역하고, 통행세를 거두는 장소로 삼은 곳이다. 금융 중심지로서 바젤의 역사는 바로 그 위치에서 펼쳐졌다. 15세기 바젤 공의회는 고위 성직자, 은행가, 서기들을 이 도시로 불러들였고, 국제적 회합이 도시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대학, 인쇄업자, 인문주의자들이 바젤을 유럽 학문 공화국의 중심지로 만든 뒤에는, 종교개혁의 난민들이 실크 리본 산업의 토대가 된 기술을 가져왔다.
상인과 유서 깊은 가문들로부터 19세기의 은행과 보험사가 성장하였고, 염료 공장들로부터 오늘날 이 지역 경제를 지배하는 화학 및 제약 그룹이 성장하였다. 1930년 국제결제은행(BIS)의 설립자들은 바젤의 중심적 위치, 중립성, 철도 연결망을 이유로 이곳을 선택하였다. 이 도시는 중앙은행가들의 회합 장소가 되었고, 이후에는 전 세계 은행을 규율하는 기준을 만드는 위원회들의 소재지가 되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바젤은 세계에서 연구와 자본이 가장 밀집한 클러스터 중 하나를 구축하였다.
이 역사에는 몇 가지 변하지 않는 요소가 관통한다. 첫째는 신중함이다. 이 덕분에 상인 가문들은 과시하지 않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이는 지금도 이 도시의 사업 방식을 형성한다. 둘째는 난민과 사상에 대한 개방성으로, 인문주의자와 위그노에서부터 오늘날 제약 그룹이 영입하는 과학자들에 이른다. 셋째는 국경에 걸친 위치로, 이는 바젤을 교역과 통과의 도시로 만들었고 오늘날 그 경제를 독일 및 프랑스와 연결한다. 넷째는 시민의 후원, 즉 시민과 기업이 사적인 부를 공공 기관으로 전환하려는 의지이다. 다섯째는 과학과 자본의 결합으로, 이는 16세기의 인쇄업자들로부터 오늘날의 바이오테크 투자자들에 이른다.
실무가에게 바젤의 역사는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준다. 제도는 금융 중심지의 지속적인 자산이다. 제도는 그것을 세운 사람들보다 오래 남고 한 장소에 명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외국 고객에 대한 은행 비밀유지의 종료가 보여 주었듯이, 신뢰는 천천히 쌓이고 빠르게 무너진다. 타인과 그들의 사상에 대한 개방성은 거듭 이 도시의 경제를 새롭게 하였다. 작은 도시라도 다른 이들이 만날 수 있는 중립적인 장소를 제공하고 신중함과 신뢰성을 겸비할 때, 그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부에서 제시한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현실에 가장 가까워지든, 바젤은 이러한 자산을 가지고 향후 10년의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최초의 상인들을 데려온 강은 지금도 BIS의 원형 타워와 제약 그룹의 연구소들 곁을 흐른다. 그 강은 이 도시의 운명이 언제나 그곳을 지나가는 것에, 그리고 머무는 것을 얼마나 정성껏 맞이하고 간직하는가에 달려 있었음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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