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로서의 교육
선교 학교는 바젤 선교회가 활동한 사회에 남긴 가장 오래 지속된 기여였다. 골드코스트에서 선교회는 마을에 초등학교를, 도시에 중등학교를 세웠고, 1848년에는 아크로퐁에 교원양성대학을 세웠는데, 이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하나이다. 학교들은 읽기, 쓰기, 셈하기, 종교와 실무 기술을 가르쳤는데, 처음에는 현지 언어로, 나중에는 점점 더 영어로 가르쳤다. 학교들은 식민지 최초의 교육받은 아프리카 중산층을 이룬 교사, 성직자, 사무원과 수공업자를 길러 냈다.1
교육에 대한 투자는 선교사들이 온전히 예견하지 못한 경제적 결과를 낳았다. 교육받은 개종자들은 무역회사와 식민 행정의 사무원, 성장하는 학교 제도의 교사, 카카오 경제의 기업가가 되었고, 마침내 1957년 가나의 독립을 이룬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경제사학자들은 식민지 시대에 프로테스탄트 선교회가 활동한 아프리카 지역이 오늘날 더 높은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제B부에서 논의한 문해력과 프로테스탄티즘에 관한 논지와 맞닿아 있다.2
따라서 바젤 선교회의 교육 투자는 바젤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 곧 인적 자본 투자의 장기적 수익을 보여 준다. 1460년 대학에 자금을 댄 바젤 시의회, 1529년 이후 학교를 세운 종교개혁가들, 그리고 아크로퐁과 망갈로르에 학교를 세운 선교사들은 모두 여러 세대가 지나서야 나타날 이익을 기대하며 교육에 투자하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연구자들에 의존하는 바젤의 현대 제약 산업은 이 오랜 전통의 수혜자이다.
주석
- 아크로퐁의 교원양성대학(1848년 설립)을 비롯한 골드코스트의 바젤 선교회 교육기관에 관하여는 가나 교육사에 관한 문헌을 참조. ↩
-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시대 선교 교육이 문해력과 소득에 미친 장기적 영향에 관하여는 경제학 문헌(예컨대 선교와 발전에 관한 Nathan Nunn 등의 연구)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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