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영지와 부의 풍경
Daig의 가문들은 부의 일부를 도시 주변의 시골 영지에 투자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바젤의 부유한 가문들은 리헨, 베팅겐, 비르스 계곡 및 바젤 농촌 지역의 마을에서 농장과 장원을 사들였고, 그곳에 시골 저택인 Landgüter를 지어 여름 몇 달을 보내며 손님을 맞았다. 이들 영지 가운데 여러 곳이 현존한다. 바로크 정원이 있는 리헨의 Wenkenhof, 공원이 있는 Bäumlihof, Christoph Merian 소유였으며 오늘날 메리안 정원(Merian Gardens)의 일부인 Brüglingen 영지,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영지가 그것이다.1
시골 영지에는 여러 기능이 있었다. 첫째, 상인들이 여름에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은거와 휴양의 장소였다. 둘째, 소작인이나 관리인이 경영하는 농장으로서, 가정에 식량과 포도주를 공급하고 수입을 창출하였다. 셋째, 가장 안전한 형태의 부로 여겨진 토지에 대한 투자였다. 넷째, 신분의 상징이었다. 가문들은 도시에서는 피했던 어느 정도의 화려함을 영지에서 드러냈다. 시골 영지의 정원, 오랑제리, 미술 소장품, 손님 접대는 도시의 사치 규제 전통이 억제하던 생활양식을 표현하였다.
토지 투자에는 금융적 논리도 있었다. 토지는 인플레이션과 전쟁에 맞서 그 가치를 보존하고, 꾸준한 수입을 낳으며, 대출의 담보로 쓰일 수 있는 내구적 자산이었다. 바젤 상인들이 사업에 필요한 수준을 넘는 자본을 축적한 18세기에, 토지와 외국 증권은 그 자본을 투자할 주된 대안이었다. 이 둘 사이의 선택은 가문들의 위험 평가를 반영하였다. 토지는 안전하지만 수익이 적었고, 외국 공채는 수익이 더 높았지만 채무불이행과 전쟁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부동산은 스위스 가문들의 부, 그리고 스위스의 은행, 연기금, 보험사가 운용하는 포트폴리오의 핵심 구성 요소로 남아 있다. 높은 가격과 낮은 수익률을 특징으로 하는 스위스 부동산 시장은 자본이 풍부한 나라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바젤과 그 주변에 농지와 도시 토지를 소유한 Christoph Merian 재단은 지역의 토지에 투자하는 도시귀족 전통의 현대적 계승자이다.
주석
- 리헨, 베팅겐 및 주변 지역에 있는 바젤 가문들의 시골 영지(Landgüter)(Wenkenhof, Bäumlihof, Brüglingen 등)에 관하여는 Denkmalpflege Basel-Stadt와 Christoph Merian Stiftung의 간행물을 참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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