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화와 스위스 섬유 산업
19세기에 스위스 동부의 선도 산업이 된 면직물 산업은 상당 부분 미국 남부에서 노예 노동으로 생산된 원면에 의존하였다.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 남부의 면화 플랜테이션은 취리히, 장크트갈렌, 글라루스, 아르가우의 방적·직조 공장을 포함한 유럽 섬유산업이 사용하는 원면의 대부분을 공급하였다. 바젤 상인들은 원면을 거래하였고, 바젤의 섬유산업은 견직물이 주를 이루었지만 면화도 가공하였다.1
1861년부터 1865년까지의 미국 남북전쟁은 미국산 면화의 공급을 중단시켰고, 유럽 섬유산업에 이른바 면화 기근이라는 위기를 초래하였다. 큰 타격을 입은 스위스 섬유산업은 이집트, 인도, 브라질에서 대체 공급원을 찾았다. 전쟁 후 미국의 노예제 폐지는 면화 생산의 조건을 바꾸었으나, 가혹한 조건에서 생산된 면화에 대한 유럽 섬유산업의 의존을 끝내지는 못하였다.
노예 노동으로 재배된 면화에 대한 스위스 섬유산업의 의존은 공급망에 관한 현대 논의의 핵심이 된 하나의 패턴을 보여준다. 한 나라의 제조업자나 무역업자가 자국에서라면 불법일 조건에서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원자재에 의존하는 것이다. 19세기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제기한 생산 조건에 대한 제조업자와 무역업자의 책임 문제는 현대의 공급망 법제가 답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주석
- 1861년 이전 미국 남부산 원면에 대한 스위스 면직물 산업의 의존과 미국 남북전쟁 중의 면화 위기에 관해서는 스위스 산업사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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