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수출과 해외 대출
스위스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주요 자본 수출국이 되었다. 높은 저축률, 안정적인 통화, 제한된 국내 투자 기회로 인해 스위스의 투자자와 은행은 대규모로 해외에 투자하였다. 스위스 은행들은 외국 채권을 고객에게 판매하고, 외국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에 대출하였으며, 외국 기업의 주식을 취득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스위스의 해외 자산은 경제 규모에 비해 컸다. 인구 대비로 보면 스위스는 유럽의 주요 채권국 중 하나였다.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스위스 자본의 가장 중요한 투자처가 되었다. 독일의 기업, 지방자치단체, 은행은 재건, 투자, 배상금 지급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에서 차입하였고, 바젤의 은행들을 비롯한 스위스 은행들은 독일 차입자에게 대규모로 대출하였다. 독일은 스위스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지리적 근접성, 공통의 언어, 긴밀한 경제적 유대 때문에도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독일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바젤은 특히 이러한 대출에 깊이 관여하였다.
대출 붐은 1931년에 끝났다. 1931년 5월 오스트리아 Creditanstalt의 붕괴는 신뢰의 위기를 촉발하였고, 이 위기는 독일로 번졌다. 독일에서는 외국 채권자들이 자금을 회수하였고 독일 은행 시스템이 압박을 받았다. 1931년 7월 Darmstädter und Nationalbank가 파산하자 독일 정부는 은행 휴업을 선포하고 외환 통제를 도입하였다.2 독일에 대한 외국의 단기 신용은 지불유예협정(standstill agreements)에 따라 동결되었다. 이 협정은 바젤 등지에서 협상되었으며, 채권자들의 자금 회수를 막고 점진적 상환을 규정하였다.
지불유예협정은 독일에 있던 스위스 은행 자산의 상당 부분을 묶어 두었다. 독일 차입자에게 빌려준 단기 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되자, 스위스 은행들은 이 자산 없이 자체 유동성을 관리해야 했다. 여러 스위스 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Basler Handelsbank를 비롯한 일부 은행은 수년간 약화된 상태로 있었다. 1931년의 경험은 해외 대출에 의존하는 금융 중심지의 취약성과 위기 시 유동성의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주석
-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스위스의 자본 수출과 해외 자산에 관해서는 스위스 해외 자산에 관한 역사 통계를 포함하여 스위스 경제사에 관한 문헌을 참조. ↩
- 오스트리아 Creditanstalt의 붕괴(1931년 5월), 1931년 7월 독일 은행 위기(Danatbank 파산), 독일의 외환 통제 및 지불유예협정에 관해서는 1931년 금융위기에 관한 표준 문헌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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