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의 『기독교 강요』(바젤, 1536)와 개혁파의 신용 윤리 — 결론
결론
프랑스 망명자 장 칼뱅은 바젤에서 Institutio의 초판을 썼으며, 이 책은 1536년 3월 토마스 플라터와 발타자르 라지우스에 의해 바젤에서 인쇄되었다. 몇 달 뒤 칼뱅은 제네바에 정착하여 개혁교회와 그 도덕 질서 및 경제 질서를 형성하였다. 1545년경에 쓴 고리대금에 관한 서한에서 칼뱅은 이자에 반대하는 전통적 논거를 배척하고 이자가 적법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빈자에게서는 이자를 받지 않을 것, 법정 최고한도 내의 적정한 이율일 것, 공동선에 봉사할 것, 그리고 형평의 원칙을 따를 것이 그것이다. 제네바는 이러한 견해를 규제된 최고이율로 구현하였다. 시의회가 정기금의 최고이율을 5퍼센트로 정하였고 법학자 보니파시우스 아메르바흐가 이자 문제에 관하여 자문하였던 바젤도 비슷한 관행을 따랐다.
이자의 정당화와 그 규제를 결합한 개혁교회의 신용 윤리는 현대 신용법의 원류이다. 현대 신용법은 고리대금을 금지하고, 소비자신용에 최고이율을 두며, 5퍼센트의 법정 지연이율을 정하고 있다. 많은 논란이 있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 테제는 여러 면에서 바젤에 들어맞는다. 칼뱅이 세르베투스를 처형한 데 맞서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가 바젤에서 쓴 관용의 호소, 그리고 현대의 수탁자 의무 개념을 예고하는 칼뱅의 청지기 직분론은 금융 중심지의 도덕적 토대에 속한다. 다음 장에서는 바젤에 자본과 산업을 가져온 망명자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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