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폰 툰 주교와 라인강 다리
주교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행위는 라인강 다리의 건설이었다. 1216년부터 1238년까지 재위한 주교 하인리히 폰 툰은 1225년경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게 하여 바젤과 오른쪽 강변을 연결했다. 이 다리는 오랫동안 보덴호와 바다 사이에서 라인강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 그 건설에는 상당한 자본이 필요했다. 사료에 따르면 주교는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성당의 보물을 담보로 제공했다.1 여러 차례 재건된 이 다리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그것이 Mittlere Brücke, 즉 중앙 다리이며, 그 석조 아치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다리는 이 지역의 경제 지리를 바꾸어 놓았다. 다리로 인해 바젤은 한편으로는 슈바르츠발트, 슈바벤, 스위스 고원 지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알자스, 부르고뉴, 프랑스 사이를 오가는 교통이 라인강을 건너는 지점이 되었다. 다리는 주교에게 통행세 수입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오른쪽 강변에 새로운 정주지를 탄생시켰는데, 주교는 이를 독자적인 도시로 창설했다. 왼쪽 강변의 그로스바젤, 즉 대(大)바젤과 대비되는 클라인바젤, 즉 소(小)바젤이 그것이다. 클라인바젤은 자체 성벽, 자체 시의회, 자체 길드 조직을 갖추었으며, 14세기까지 주교의 영주권 아래 별개의 도시로 남아 있었다.
이 다리는 사회기반시설이 금융 중심지의 토대임을 상기시킨다. 상인들은 강을 건널 수 있고, 창고를 찾을 수 있으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경로를 선택한다. 대성당 보물을 담보로 재원을 마련한 하인리히 폰 툰의 투자는 도시가 수 세기 동안 활용하게 될 교통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이는 또한 훗날 공공재정의 핵심이 될 관행, 즉 장래의 수입을 담보로 한 차입을 통해 사회기반시설의 재원을 조달하는 관행의 초기 사례이기도 하다.
주석
- 1225년경 주교 Heinrich von Thun에 의한 라인강 다리(Mittlere Brücke)의 건설과 대성당 보물의 담보 제공을 포함한 그 재원 조달에 관해서는 HLS, 항목 “Heinrich von Thun”; Wackernagel, 제1권, 1907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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