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와 제국 사이: 도시의 지위
14세기 말 바젤의 법적 지위는 제국 주교도시들에 특징적인 방식으로 모호하였다. 형식상으로는 주교가 여전히 도시의 영주였다. 주교는 시민들의 충성 서약을 받을 권리가 있었고, Handfeste(특권 헌장)를 확인하였으며, 일부 관리를 임명하였다. 실제로는 도시가 스스로를 통치하고, 수입을 징수하고,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수행하며, 전쟁과 강화를 결정하였다. 제국 헌정 체제는 황제에게 직속된 제국도시, 즉 Reichsstädte와 주교 영주로부터 해방된 자유도시, 즉 Freie Städte를 구별하였다. 바젤은 스트라스부르, 쾰른, 마인츠, 보름스, 슈파이어, 레겐스부르크와 함께 후자의 범주에 속하였다.1
자유도시의 지위는 재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자유도시는 황제가 제국도시에 부과하는 통상적인 제국세를 납부할 의무는 없었으나, 제국의회가 결정하는 경우 제국의 원정과 제국의 비용에 기여할 것이 기대되었다. 자유도시는 제국의회에 대표를 파견하였고, 그곳에서 제국도시들과 함께 도시부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자유도시는 황제의 보호를 누렸는데, 이는 실제적 가치는 제한적이었으나 그 자치에 법적 틀을 제공하였다.
바젤은 이 틀을 능숙하게 활용하였다. 바젤은 역대 황제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로부터 특권을 얻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금화 주조권과 1471년의 정기시 특권이 있었다. 동시에 바젤은 인근 도시들 및 스위스 동맹자들과 독자적인 동맹을 추구하였다. 주교와 제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양쪽의 보호를 받는 이 도시의 위치는, 훗날 스위스 전체가 유럽 열강 사이에서 차지하게 될 위치를 예고한다. 더 큰 세력들 사이를 항해하고, 각각으로부터 특권을 얻으며, 어느 하나에도 의존하지 않는 능력은 스위스 정치의 지속적인 역량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또한 스위스 금융 중심지의 조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 고객들은 서로 자주 대립하는 국가들 출신이기 때문이다.
바젤 지위의 모호성은 또한 중세 세계에서 법적 형식이 갖는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 도시는 담보 취득, 매입, 특권을 통해 권리 하나하나씩 독립을 획득하였으며, 주교 영주권이라는 허구를 유지하면서 그 내용을 비워 나갔다. 공공연한 충돌을 피하고 법적 형식을 존중한 이러한 점진주의는 스위스식 자치의 길에 특징적이다. 이는 스위스 금융규제의 발전에도 상응하는 면이 있는데, 스위스 금융규제는 흔히 기존 제도를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주석
- 중세 후기 제국에서 제국도시(Reichsstädte)와 자유도시(Freie Städte)의 구별 및 바젤의 지위에 관하여는 HLS, 항목 “Reichsstadt”; 제국 헌정사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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