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서적 거래에서 바젤의 위상
16세기의 기준으로 바젤은 쾰른, 슈트라스부르크, 뉘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라이프치히, 비텐베르크와 더불어 독일어권 세계의 선도적인 인쇄 중심지였다. 바젤은 이들 가운데에서도 생산물의 질과 학술적 성격으로 두드러졌다. 바젤의 인쇄업자들은 학자, 성직자, 대학으로 이루어진 국제 시장을 위한 라틴어 및 그리스어 저작을 전문으로 하였고, 유럽 전역에 책을 팔았다. 교부, 에라스무스, 그리스 고전, 베살리우스, 뮌스터의 바젤 판본은 그 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들에 속하였다.1
이러한 전문화는 경제적 결과를 낳았다. 학술 시장은 국제적이고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며 품질에 기꺼이 값을 치렀지만, 규모가 제한적이었고 유럽을 분열시킨 종교적·정치적 갈등에 노출되어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의 교파 분열은 가톨릭 국가들에서 바젤 서적의 시장을 축소시켰다. 그곳에서 개신교 인쇄업자들은 의심을 받았고, 그들의 책은 점점 더 금지되었다. 1559년 교황청이 처음 간행한 금서 목록에는 바젤에서 인쇄된 많은 저자의 저작이 올랐는데, 그 가운데에는 에라스무스도 있었으며, 그의 저작은 여러 형태로 금서 목록에 올랐다.2 이렇게 바젤 서적의 시장은 그 세기 후반에 줄어들었고, 이는 바젤 인쇄업을 쇠퇴로 이끌었다.
바젤 인쇄업의 쇠퇴는 수출 산업이 개방된 시장에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국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데 특화된 산업은 시장의 개방성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정치적 갈등이 시장을 닫으면 타격을 입는다. 국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스위스 금융 중심지도 같은 의존을 경험하였다. 그 사업은 시장이 개방된 시기에 성장하였고, 외국 정부가 금융 서비스의 국경 간 제공을 제한하거나 스위스에 있는 자국민의 계좌에 압력을 가할 때 타격을 입었다. 금융 서비스에 관한 포괄적 협정이 없는 상태에서 여전히 제한되어 있는 스위스 금융기관의 유럽연합(EU) 시장 접근은 이러한 의존의 현대적 표현이며, 제K부에서 이를 살펴본다.
주석
- 16세기 독일어권 세계의 인쇄 중심지 가운데 바젤의 위상과 라틴어 및 그리스어 학술 출판에 대한 전문화에 관하여는 제국 내 서적사에 관한 문헌; VD16(Verzeichnis der im deutschen Sprachbereich erschienenen Drucke des 16. Jahrhunderts)의 서지 자료 참조. ↩
- 로마 금서 목록(1559년 바오로 4세 치하에서 처음 공포; 1564년 트리엔트 금서 목록)과 그 목록에서 에라스무스 및 개신교 인쇄업자가 인쇄한 서적을 다룬 방식에 관하여는 금서 목록의 역사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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