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속의 바젤
대공황은 1930년대 초 바젤에 이르렀다. 세계 무역의 붕괴로 화학 및 섬유 산업의 수출이 줄어들자 실업이 증가하였다. 이미 쇠퇴하고 있던 견직 리본 산업은 마지막 타격을 입어 많은 리본 공장이 문을 닫았다. 화학 산업은 의약품으로의 다각화와 국제적 구조 덕분에 보다 강한 회복력을 보였으나, 역시 인력과 투자를 줄였다.1
바젤슈타트주(칸톤)는 차입으로 재원을 마련한 공공사업과 실업자 지원으로 대응하였다. 1935년 출범한 ‘붉은 바젤’의 사회민주당 정부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주택, 교육, 사회부조의 개선을 비롯한 사회 개혁을 도입하였다. 주립은행은 공공 투자의 일부에 자금을 공급하였고, 프라이빗 뱅크와 보험회사들은 주의 채권을 매입하였다.
대공황은 은행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III장에서 보았듯이 바슬러 한델스방크(Basler Handelsbank)는 독일에 대한 익스포저로 약화되었다. 스위스 은행 코퍼레이션(Swiss Bank Corporation)은 해외 사업을 축소하고 스위스 고객에 집중하였다. 프라이빗 뱅크들은 해외 도피 자본의 유입으로 이익을 얻었으며, 이는 다른 사업의 위축으로 인한 손실의 일부를 상쇄하였다. 스위스 프랑의 안정성과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유지가 위기에 시달리는 이웃 나라들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인 1930년대의 경험은 그 후 수십 년간 스위스가 안전한 피난처로서 수행할 역할을 준비하였다.
주석
- 1930년대 초 대공황이 바젤 경제에 미친 영향(수출, 실업, 리본 산업의 쇠퇴)에 관하여는 바젤 경제사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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