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 개최지로서의 바젤
A부에서 1431년 공의회까지 그 기원을 추적한, 국제 회합의 장소로서 바젤의 전통은 산업 시대에도 이어졌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바젤에서 열린 두 차례의 대회는 지속적인 역사적 의의를 지녔다.
1897년 8월 바젤 카지노의 연주회장에서 제1차 시온주의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를 소집한 사람은 그 1년 전에 The Jewish State(『유대 국가』)를 출간한 빈의 언론인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이었다. 대회는 공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유대 민족의 고향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한다는 목표를 선언한 바젤 강령을 채택하였고, 시온주의 기구를 창설하였다.1 헤르츨은 일기에 자신이 바젤에서 유대 국가를 창건하였다고 적었다. 이후의 여러 시온주의 대회도 바젤에서 열렸으며, 바젤은 시온주의의 역사와 계속 연관되어 왔다.
1912년 11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발칸 전쟁으로 절박해진 유럽 전쟁의 위험에 반대하기 위하여 바젤에서 임시 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의원들은 시내를 행진하였고, 개혁교회 당국이 제공한 대성당(뮌스터)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여러 나라의 연사들은 노동계급에게 전쟁을 막을 것을 호소하였다. 대회가 채택한 바젤 선언은 모든 나라의 노동자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전쟁에 반대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2 그로부터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은 자국 정부를 지지하였다.
이들 대회는 1930년 중앙은행들에게 바젤이 매력적인 장소가 되게 한 특징을 보여 준다. 그것은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을 가진 국제 회합을 중립적인 환경에서, 좋은 교통·통신 여건과 국제적인 주민 구성 아래 개최할 수 있는 역량이다. 시온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모두에게 회의장과 대성당을 제공하였던 이 도시는 이후 중앙은행가들에게 호텔과 사무실을 제공하게 된다.
주석
- 테오도어 헤르츨이 소집한 바젤의 제1차 시온주의 대회(1897년 8월 29일~31일)와 바젤 강령에 관하여는 HLS, 항목 “Zionistenkongresse” 참조. ↩
- 바젤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임시 대회(1912년 11월 24일~25일), 대성당 집회 및 전쟁에 반대하는 바젤 선언에 관하여는 HLS, 항목 “Internationale”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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