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과 대서양 경제: 식민주의와의 연루 — 결론
결론
스위스에는 식민지가 없었지만, 스위스의 상인, 투자자, 제조업자, 군인과 관리들은 식민지 경제와 대서양 노예무역에 참여하였다. 바젤은 가장 깊이 관여한 스위스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바젤 상인들은 노예 노동으로 생산된 식민지 상품을 거래하였다. 훗날 크리스토프 메리안 재단의 기반이 된 Merian-Forcart 상사의 재산은 부분적으로 이 무역을 통해 축적되었다. 바젤의 Christoph Burckhardt & Cie 사는 18세기 후반 낭트에서 출항한 노예무역 원정의 자금 조달과 선박 의장(艤裝)에 참여하였다. 스위스 섬유 제조업자들은 노예무역에서 교역품으로 쓰인 indiennes(날염 면직물)를 생산하였고, 스위스 면직 산업은 노예가 재배한 미국산 면화에 의존하였다. 바젤 출신의 이자크 페슈는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를 위해 퀴라소 총독을 지냈다. 스위스 정착민들은 19세기 후반까지 브라질에서 농장과 노예를 소유하였다.
2000년대 초 이후 연구와 공론은 이 역사를 밝혀 왔다. 그 뒤 바젤의 기관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이 역사가 제기하는 물음, 곧 상인, 투자자와 금융가들이 자신이 거래하는 상품이 생산되는 조건에 대해 지는 책임에 관한 물음은 현대의 공급망 및 실사 입법이 답하고자 하는 물음이다. 다음 장에서는 다른 정신으로 아프리카와 관계를 맺은 기관, 곧 바젤 선교회와 그 무역회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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