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례파와 개혁의 한계
바젤의 종교개혁에도 취리히나 베른에서와 마찬가지로 당국이 탄압한 급진파가 있었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선서, 무기 소지 및 공직 취임을 거부하였으며, 세상과 분리된 참된 신자들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였다. 이들은 1520년대 중반 바젤과 그 영역에 나타났다. 시 참사회는 취리히와 베른의 참사회와 마찬가지로 이들을 시민적·종교적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보아 박해하였다. 재세례파는 투옥되고 추방되었으며, 일부는 처형되었다.1
재세례파에 대한 박해는 개혁된 시민 질서의 한계를 보여 준다. 종교개혁은 성서에 따라 자신의 종교를 개혁할 공동체의 권리를 주장하였으나, 이 권리를 공동체 내부의 개인이나 집단에게 인정하지는 않았다. 시민 공동체는 여전히 종교 공동체였기 때문에, 이견은 그 통일성에 대한 위협으로 취급되었다. 재세례파의 선서 거부는 특히 중대한 의미를 가졌다. 선서는 시민 질서의 토대였기 때문이다. 시민은 도시에 충성을 맹세하였고, 관리는 직무 수행을 맹세하였으며, 증인은 진실을 말할 것을 맹세하였고, 계약 당사자는 계약 이행을 맹세하였다. 선서를 거부하는 자는 스스로를 법질서 밖에 두는 것이었다.
현대법에서 선서는 그 의미를 상당 부분 잃었으나, 법적·금융적 질서의 참여자는 그 의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원칙은 남아 있다. 금융 중심지는 계약의 집행 가능성, 신고 내용의 진실성 및 임원의 책임성에 의존한다. 고객이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 서명하는 신고서, 즉 실질 소유자의 신원이나 자산의 세법 준수를 확인하는 신고서는 선서의 현대적 등가물이다. 그 신고가 허위인 경우 형사 범죄가 될 수 있다.2
주석
- 1520년대와 1530년대 바젤과 그 영역의 재세례파(Täufer) 및 그들에 대한 박해에 관하여는 HLS, “Täufer” 항목 참조. ↩
- 스위스 은행의 주의의무에 관한 협약(CDB)에 따른 실질 소유자 신고(Form A) 및 허위 신고에 대한 형사책임(예: 문서위조, 「스위스 형법」 제251조(SCC))에 관하여는 E부 참조. ↩
일반적인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글은 법률 또는 세무 자문에 해당하지 않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자문을 대체하지 않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위임 관계를 성립시키지 않습니다. 이 글은 2026년 10월 기준의 법적 상황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