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트 에셔, 취리히 그리고 고트하르트
철도 시대는 스위스 금융 중심지들 사이의 균형도 바꾸어 놓았다. 취리히에서는 정치가이자 기업가인 Alfred Escher가 1853년 스위스 북동철도를 설립하였고, 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856년 프랑스의 Crédit Mobilier를 본뜬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인 Schweizerische Kreditanstalt를 설립하였다.1 훗날 Credit Suisse가 되는 Kreditanstalt는 스위스 최대의 은행이자 스위스 동부의 철도와 산업의 주요 자금 공급자가 되었다. Escher는 또한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의 재정 참여로 알프스를 관통하는 철도를 건설한 고트하르트 철도회사를 이끌었다. 1882년에 개통된 고트하르트 터널은 당대 최대의 공학적 업적이었다.
고트하르트 노선은 바젤을 북유럽과 이탈리아 사이의 가장 중요한 알프스 횡단 철도 노선의 북쪽 관문으로 만들었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북부의 화물과 여행자들이 밀라노와 제노바로 가는 길에 바젤을 거쳐 갔다. A부가 쥐라산맥을 넘는 로마 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 바젤의 통과 교통 중심지로서의 역할은 철도에 의해 새로워지고 몇 배로 커졌다.
취리히는 철도 금융과 연계된 대형 주식회사 은행을 설립함으로써 스위스 상업은행업에서 우위를 차지하였고, 이 우위를 결코 잃지 않았다. 제III장에서 보듯이 바젤은 1872년 자신의 컨소시엄을 주식회사 은행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대응하였으나, 스위스 은행업의 무게중심은 19세기 후반에 취리히로 옮겨 갔다. 취리히에 관한 자매편은 이 전개를 취리히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주석
- Alfred Escher(1819–1882), 스위스 북동철도(Schweizerische Nordostbahn, 1853년), Schweizerische Kreditanstalt(1856년), 고트하르트 철도회사(1871년)에 관해서는 HLS의 “Escher, Alfred” 항목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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