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폐지와 스위스에서의 반향
178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어 1807년 영국 노예무역의 폐지와 1833년 영국 식민지 노예제의 폐지를 이끌어 낸 노예무역 및 노예제 폐지 운동은 스위스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바젤 경건주의 집단의 구성원들을 비롯한 스위스의 지식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노예제 폐지 운동을 지지하였다. 제V장에서 살펴보는 바젤 선교회는 부분적으로 영국 노예제 폐지론자들에게 영감을 준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정신 속에서 설립되었다.1
스위스에는 식민지가 없었고 따라서 폐지할 식민지 노예제도 없었으며, 노예제에 관한 스위스의 논의는 제한적이었다. 스위스 상인과 투자자들은 유럽 열강이 노예무역을 폐지한 이후에도 식민지 경제에 계속 참여하였다. 일부는 노예제가 여전히 합법이었던 곳, 즉 1865년까지의 미국, 1886년까지의 쿠바, 1888년까지의 브라질에서 노예제로부터 계속 이익을 얻었다. 1864년 연방의회의 논의는 스위스 당국이 해외 스위스 시민의 경제 활동에 대해, 그것이 노예제와 관련된 경우에도, 개입하기를 꺼렸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소극성은 현대에도 유사한 예가 있다. 스위스 당국은 오랫동안 진출국의 주권과 스위스 기업의 경쟁력을 이유로 해외에서의 스위스 기업 활동을 규제하기를 꺼려 왔다. 이 장의 끝에서 살펴보는 책임기업 국민발안(Responsible Business Initiative)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소극성이 점점 더 도전받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주석
- 바젤 경건주의 집단과 바젤 선교회와 관련된 것을 포함하여 스위스에서의 노예제 폐지 운동의 수용에 관해서는 HLS(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 항목 “Sklaverei”; 스위스 노예제 폐지론에 관한 문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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