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에 의한 혁명
1529년 2월 9일, 바젤 길드의 무장한 구성원들이 시장 광장에 모여 시의회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 뒤, 도시의 교회들을 돌며 성상을 끌어내리고 제단을 부수고 조각상을 불태웠다. 몇 주 사이에 미사가 폐지되고, 가톨릭 시의원들이 축출되었으며, 수도원들이 해산되고, 예배와 도덕에 관한 새로운 질서가 선포되었다. 1529년 4월 1일 시의회는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시민 질서의 원칙을 정한 종교개혁령을 공포하였다.1
바젤의 종교개혁은 종교적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정치적·경제적 혁명이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으로 도시 내 권력은 교회와의 단절을 망설였던 옛 귀족 가문과 상인들로부터 길드와 개혁파 설교자들에게로 옮겨 갔다. 종교개혁은 주교 권한의 마지막 잔재를 끝내고 로마와의 유대를 끊었다. 교회 재산을 시로 이전하였다. 빈민 구제, 교육과 도덕 규율을 재편하였다. 그리고 바젤을 취리히, 베른과 나란히 스위스 연방의 개신교 진영에 위치시켰으며, 이후 세 세기 동안 연방을 분열시킬 교파 간 분쟁 속에 놓이게 하였다.
이 장에서는 1529년의 종교개혁을 시민 질서와 그 재정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종교개혁에 이르는 과정, 요하네스 외콜람파디우스의 역할, 1529년의 사건들, 새로운 교회 질서, 교회 재산의 세속화, 그리고 도시의 경제 문화에 미친 장기적 결과를 기술한다. 다음 장에서는 바젤을 칼뱅 및 제네바와 연결하는 신용과 이자의 신학적·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주석
- 1529년 2월 8–9일의 사건(길드의 무장 집회, 성상 파괴)과 1529년 4월 1일의 종교개혁령에 관하여는 HLS, 항목 “Reformation”, 바젤 부분; Burckhardt, Geschichte der Stadt Basel, 1942; Wackernagel, 제3권, 1924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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