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았던 기둥
1934년 「은행법」 이후 75년 동안 스위스에서 은행 비밀유지는 금융 중심지와 국가 정체성의 기둥으로 여겨졌다. 모든 정당의 정치인들이 이를 옹호하였다. 은행들은 이를 국가의 호기심으로부터 고객의 사적 영역을 보호하는 것으로 내세웠다. 외국 정부들은 이를 탈세자와 범죄자의 은신처라고 비판하였으나, 이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중문화는 스위스를 번호 계좌, 신중한 은행가, 현금이 든 가방과 연결 지었다. 은행 비밀유지와 탈세(조세포탈)와 조세사기를 구분하는 스위스의 법리에 의하여 보호되는, 외국 고객의 미신고 재산을 관리하는 업무는 스위스 금융 중심지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1
2008년부터 2018년 사이에 이 기둥은 외국 고객에 대하여 무너졌다. 미국, 유럽연합(EU), G20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압력 아래, 스위스는 대외 관계에서 조세포탈과 조세사기의 구분을 포기하였고, 외국 세무당국과 요청에 의한 정보교환에 합의하였으며, 미신고 자산의 과세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고, 자국 은행의 과거 청산을 위한 미국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마침내 금융계좌정보 자동교환을 도입하였다. 10년 만에 스위스 금융 중심지는 외국인의 조세포탈을 보호하던 데에서 외국 세무당국에 대한 완전한 투명성으로 이행하였다.
이 장은 이러한 변화를 추적한다. 2008년 이전에 존재하던 체계, 붕괴를 촉발한 UBS 사건, 그에 뒤따른 국제적 압력, 은행 비밀유지를 대체한 양자 및 다자 협정, 과거 청산, 그리고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의 업무에 미친 영향을 서술한다. 바젤은 이 역사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 스위스 은행공사(Swiss Bank Corporation)는 그 후신인 UBS를 통하여 미국 사건의 중심에 섰고, 바젤에 있는 스위스 은행협회는 은행들의 대응을 협상하였다.
주석
- 20세기 스위스 정치와 정체성에서 은행 비밀유지가 차지한 위치와 국경 간 프라이빗 뱅킹에서의 역할에 관하여는 스위스 은행 비밀유지의 역사에 관한 문헌(예: Guex, 2000; Vogler, Das Schweizer Bankgeheimnis, 2005)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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