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의 새로운 산업
1500년경 바젤에는 유럽에서 가장 생산적인 인쇄 산업 가운데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구 1만 명의 도시에서 수십 곳의 인쇄소가 식자공, 인쇄공, 교정자, 삽화가, 제본공을 고용하였다. 이 인쇄소들은 프랑크푸르트와 리옹의 박람회, 그리고 파리, 베네치아, 안트베르펜, 런던의 서점으로 책을 보냈다. 교부들, 고전 저자들, 원어 성경, 에라스뮈스의 저작을 담은 바젤판은 학문성과 장인 기술의 기준을 세웠고, 이로써 이 도시의 이름은 학식 있는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1
바젤의 인쇄 산업은 보통 인문주의, 종교개혁 또는 미술의 역사의 일부로 연구된다. 이 장은 다른 각도에서, 즉 하나의 사업으로서 인쇄 산업을 살펴본다. 인쇄는 바젤 역사상 최초의 산업이었고, 어디에서든 최초의 산업 가운데 하나였다. 그 투자 규모, 생산 주기의 길이, 시장까지의 거리, 사업의 위험은 개별 장인의 자원을 넘어서는 금융 기법을 필요로 하였다. 바젤의 인쇄업자들은 자본을 조달하고, 조합을 결성하고, 신용을 주고받고, 재고를 관리하고, 먼 시장에서 판매하고, 자신의 투자에 대한 보호를 구하는 기업가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한 세대의 상인들에게 산업 사업의 경영을 훈련시켰고, 훗날 교역과 은행업에 활용될 재산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주석
- 1500년경 바젤 인쇄 산업과 그 유럽적 의의에 관하여는 HLS, 항목 “Buchdruck”; Hieronymus, Basler Buchillustration 1500–1545, 1984; Berchtold, Bâle et l'Europe, 1990, 제1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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