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도시의 선교 단체
빈 회의가 열리고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패배한 해인 1815년, 바젤의 경건주의 시민들이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처음 목적은 소박하였다. 다른 선교회, 특히 지원자가 부족하던 영국과 네덜란드의 선교회에서 봉사할 선교사로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선교회는 바젤에 선교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는 뷔르템베르크, 스위스와 그 밖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젊은 수공업자와 농민을 모집하여 신학 교육과 실무 교육을 실시한 뒤 해외로 파송하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선교회는 자체 지휘 아래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러시아와 캅카스로, 이어서 서아프리카와 인도로 보냈다.1
바젤 선교회는 19세기 최대 규모의 프로테스탄트 선교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선교사들은 오늘날의 가나인 골드코스트, 인도 남부, 중국, 카메룬과 그 밖의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들은 그곳에 교회, 학교, 병원과 작업장을 세웠다. 선교회는 경제적 기업이기도 하였다. 선교회는 무역회사인 바젤 선교 무역회사(Basel Mission Trading Company)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선교지와 무역을 하였고, 현지 개종자를 고용하였으며, 새로운 작물과 산업을 도입하였고, 선교회를 지원하는 이익을 창출하였다. 골드코스트에서 이 무역회사는 식민지의 주요 상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회사는 20세기 초 골드코스트를 세계 최대의 카카오 생산지로 만든 카카오 경제의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이 장에서는 종교, 상업과 식민주의의 관계에 관한 사례 연구로서 바젤 선교회와 그 무역회사를 검토한다. 이 장은 이 책에서 제네바에 관한 자매편 가운데 아프리카를 다룬 부분에 대응한다. 제네바와 아프리카의 연결이 원자재 트레이딩, 은행업과 외교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바젤과 아프리카의 연결은 선교회, 무역회사와 카카오 경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두 경우 모두 식민지를 갖지 않은 스위스 도시들이 어떻게 아프리카의 경제적·사회적 변혁에 관여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주석
- 1815년 Evangelische Missionsgesellschaft zu Basel(바젤 선교회)의 설립, Christentumsgesellschaft 서클에서의 그 기원과 선교학교에 관하여는 스위스 역사사전(HLS), 항목 “Basler Mission”; Mission 21의 간행물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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