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도시에서 열린 보편 공의회
1431년 여름, 바젤시는 라틴 교회 공의회의 개최지가 되었다. 거의 20년 동안 유럽 각지에서 온 고위 성직자, 신학자, 교회법학자, 국왕과 제후의 사절, 비서, 서기, 상인, 은행가들이 인구 약 1만 명의 도시에 모여들었다. 바젤 공의회는 15세기의 대표적인 정치적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공의회는 보헤미아의 후스파와 협상하고, 그리스 교회와의 통합을 논의하였으며, 교황청의 재정을 개혁하고, 교황 한 명을 폐위하고 다른 교황을 선출하였다. 공의회는 실패로 끝나, 교황청이 승리한 뒤인 1449년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바젤에게 공의회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공의회는 도시를 유럽의 엘리트, 이탈리아 은행가들, 그리고 르네상스 인문주의 문화와 접촉하게 하였다. 공의회는 제지업을 자극하였고 인쇄업의 융성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1460년 대학 설립으로 직접 이어진 인맥의 네트워크를 남겼다.1
이 장에서는 공의회를 하나의 금융적 사건으로 살펴본다. 공의회의 교회사와 정치사에 관하여는 방대한 문헌이 연구해 왔다. 이 장은 공의회의 개최가 도시의 경제와 재정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제기구와 이를 유치하는 도시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무엇을 드러내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울림이 있다. 1930년 이래 바젤은 국제결제은행(BIS)을 유치하고 있다. 자매편의 주제인 제네바는 수십 개의 국제기구를 유치하고 있다. 국제기구 유치의 경제학, 곧 그 편익과 비용, 그리고 현지 물가, 고용, 평판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날 논쟁의 대상이다. 바젤 공의회는 이러한 질문을 문헌에 근거하여 연구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주석
- 바젤 공의회 전반에 관하여는 Helmrath, Das Basler Konzil 1431–1449. Forschungsstand und Probleme, 1987; HLS, 항목 “Basler Konzil”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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