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권 세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도시
바젤은 라인강이 북쪽으로 꺾이고 세 나라가 만나는 지점, 곧 독일어권 스위스의 북서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어 언어 경계는 도시에서 서쪽과 남서쪽으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지난다. 순트가우 구릉지 너머로는 벨포르 협곡이 부르고뉴와 프랑스 내륙을 향해 열려 있다. 북쪽 산기슭이 도시 외곽까지 뻗어 있는 쥐라산맥은 그 서부와 중부에서 중세 초기부터 프랑스어권이었다. 쥐라주, 베른 쥐라, 들레몽시는 기차로 한 시간 거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대성당(뮌스터) 뒤편의 팔츠 테라스에 서면 맑은 날에는 세 언어적·정치적 공간의 산지를 볼 수 있다. 북동쪽으로는 슈바르츠발트, 북서쪽으로는 보주산맥, 남쪽으로는 쥐라산맥이다.1
이러한 위치 때문에 바젤이 비엘/비엔이나 프리부르와 같은 의미의 이중언어 도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바젤에서는 문어 표준형으로든 지역 방언으로든 독일어가 언제나 정부, 길드, 교회의 언어였다. 앞 장에서는 독일어, 스위스 독일어, 바젤 방언(Baseldytsch)의 이러한 역사를 상세히 추적하였다.2 그럼에도 프랑스어는 모든 시대에 걸쳐 특정한 사회적 영역에서 존재해 왔다. 프랑스 및 리옹과의 교역, 외교, 난민 공동체, 교양 엘리트의 언어로서였다. 프랑스어의 존재는 언제나 기능과 사회적 지위에 결부되어 있었다. 상인은 리옹과 서신을 주고받기 위해 프랑스어가 필요했고, 젊은 귀족 자제는 제네바나 파리의 살롱에 드나들기 위해 프랑스어가 필요했다. 로렌이나 도피네에서 온 난민에게 프랑스어는 단지 자신이 가지고 온 모국어였다.
주석
- 스위스 북서부와 상부 라인 지역의 언어 경계에 관한 지리에 관해서는 스위스 역사사전(HLS), 항목 “Sprachgrenzen” 및 “Basel (Kanton)” 참조. ↩
- 이 책 제J부 제I장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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